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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마당] 노벨 문학상 의미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한국인 대부분이 예상치 못했던 실로 놀라운 일이다. 노벨상은 해마다 6개 부문에 걸쳐 시상하지만 한국인 수상자는 평화상 이후 오랫동안 없었다. 이로 인해 노벨상을 우리와 무관한, 크게 특별하지 않은 상으로 치부하기도 했다.     한국 문학계도 뛰어난 작가와 우수한 작품들을 많이 보유하고 있지만 노벨상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한강 작가의 수상으로 이런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한국인은 목표를 향해 끈기있게 도전하는 근성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고,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운 우수한 민족이다. 이번 한강 작가의 쾌거는 이렇게 다져진 바탕에서 싹트고 자라 열매를 맺은 결과이기도 하다.     노벨 과학상이나 경제 분야의 상은 선진 학문의 다져진 기반 위에서 연구한 학자들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문학상은 그 국가나 민족의 오랜 역사 속에 쌓인 깊은 정신문화의 진액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작가가 직·간접으로 겪은 정신적,육체적 충돌을 글로 독자에게 전달해 강력한 소용돌이를 일으킬 때, 문학의 정수에 다가서게 된다.     스웨덴 한림원은 “역사적 상처에 직면하고 인간 삶의 취약성을 노출하는 시적 산물”이라며 한강 작가에게 노벨상을 준 이유를 밝혔다.     한강 작품의 문학성은 노벨상 수준 그대로이지만, 소재들은 한국 사회에서 끝없이 평행선을 긋는 두 진영에서 상반된 해석을 하는 것들이다. 이로 인해 나라 전체가 환호하며 축하해야 할 수상에 일부 불협화음이 생기기도 했다.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으로 한국 현대사에 관심을 갖는 외국인이 많아지고 있다. 아마 그중 일부는 부끄러운 역사로 부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참에 주요 역사적 사건들의 진실을 명확히 규명해 세계에 제대로 알리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 않을까 싶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문학상 노벨 노벨 문학상 노벨상 수상 노벨상 수준

2024-11-12

[독자 마당] 무병장수

무병장수를 꿈꾸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중국은 진시황제부터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 부의까지 1911년간 존재했던 황제 335명의 평균 수명이 41세였고, 조선시대 왕 27명의 평균 수명도 37세에 불과했다. 권력으로도 돈으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 인간의 수명이다.     그런데 지금은 100세 시대다. 한국만 해도 100세 이상의 인구가 170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건강하게 100세까지 산다면 말할 것도 없는 큰 축복이다. 그러나 인간 수명이 길어지면서 치매 환자도 늘고 있다. 치매라는 고약한 병은 본인만 문제가 아니라 온 집안을 힘들게 한다. 많은 의학자가 치매약 개발에 나서고 있지만 아직 신통한 결과는 없다.   인간의 뇌는 새로운 환경을 접하면 신경세포가 활성화된다는 연구 보고서가 있다. 치매를 치료할 수 있는 약은 없지만 진행을 늦출 수 있는 방법은 있다고 하니 이를 따르는 것도 생각해볼 만 하다.   치매 발병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인체의 수분 부족도 큰 원인 중 하나라고 한다. 수분이 부족하면 편두통이 오고, 독소를 빨리 배출하지 못해 혈액도 탁해진다는 것이다. 신장에 무리가 없는 한 하루에 물을 8컵 이상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또 여러 가지 전조 증상을 알아두는 것도 필요하다. 냄새를 맡지 못하고 음식 맛을 못 느끼고, 감각이 둔해지고, 물건을 자주 떨어뜨리고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고, 성격이 변하고 이기적이 되며 과거는 잘 기억해도 방금 한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등이다.     치매는 불가항력의 질환이다. 하지만 잘 먹고, 잘 자고, 질병을 조심하는 것도 예방 방법이다.  또 치매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진 음식을 챙겨 먹고 특히 달걀, 강황. 브로콜리, 연어 등은 자주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심한 운동은 시니어들에 오히려 해가 된다니 많이 걷는 것도 방법이다. 건강하게 100세까지 살자.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무병장수 치매약 개발 진시황제부터 청나라 치매 예방

2024-11-05

[독자 마당] 글은 쓸 수 있을 때까지

자연의 4계절은 질서 있게 오가고 하는데 인생의 계절은 가면 다시 올 줄을 모른다. 무심코 거울을 보니 어제의 젊음은 예고도 없이 어디론가 가 버렸다. 부지런히 소식을 주고받던 카톡 친구들도 하나 둘 소식이 끊어진다. 그러면 어김없이 그들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들린다.     2002년 어느 날 '아! 이 지독한 냄새'라는 제목의 글을 써 중앙일보 오피니언 담당자에게 보냈다. 당시 글을 많이 써 보지 않았기에 별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내 글이 신문에 실려 너무나 놀랐다. 아니 온 가족이 다 놀랐다. 따져 보니 벌써 22년 전의 일이다.   그 일은 내가 부지런히 글을 쓰는 계기가 됐다. 용기를 얻어 그 후로 신문사에 계속 글을 보내고 한 월간지와 고등학교 동문회 회지 등에도 기고를 했다. 그리고 책도 두 권이나 출판했다.   땅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씨앗은 봄이 와도 싹을 기대할 수 없으니 그 씨앗은 쓸모가 없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스스로 깊은 고독에 빠져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일은 많은 열정과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다. 나라고 예외는 아닌 것 같다.   이제 나이도 들었으니 글 쓰는 것도 그만둘까 생각하니 어쩐지 허전해진다. 아니 허전함을 넘어 슬픈 생각이 든다. 그래서 글쓰기를 중단하기보다는 새로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 작은 씨앗 하나에 모든 것이 시작되니 그 씨앗이 땅속에서 움이 트고 싹이 나오니 하나님의 창조의 찬란한  결실을 기대해 본다. 씨앗 없는 땅에는 생명력이 있는 그 어떤 것도 창조되지 못한다. 그 씨앗은 모든 것의 시작이다.     이제부터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함께하는 글을 쓰자.  내가 글을 쓸 수 있을 때까지. 이영순·산타클라리타독자 마당 씨앗 하나 중앙일보 오피니언 고등학교 동문회

2024-10-29

[독자 마당] 어머니

시월이 오면 나에겐 잊히지 않는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는 장미처럼 화려하지도, 백합처럼 우아하지도 않았지만 늘 수줍게 핀 노란 들국화처럼 조용한 미소를 보내주었습니다.     가을 운동회 날 코흘리개 소년이 2등 상품으로 받은 작은 공책 한권을 보며 대견해 하던 그 여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늦은 여름 어느 날 오후, 흙탕물을 헤치며 미꾸라지를 잡느라 흙 범벅이 된 옷을 벗기고 씻겨주던 그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을 앞 들판이 누렇게 변해 갈 무렵 논두렁 뛰어다니며 메뚜기 잡아 오면 가마솥 뚜껑에 볶아주던 그 여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자꾸 벗겨지는 검정 고무신을 손에 쥐고 코스모스 핀 신작로를 내달려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가면, 읍내 장에 다녀오며 사 온 사탕 한 봉지를 두손에 꼭 쥐여주며 환하게 웃던 그 여인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공놀이하다 발목을 삐어 누나 등에 업혀 이웃 마을 한의사 할아버지 집으로 갈 때 소년의 손을 꼭 잡고 달래던 그 여인의 손길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집 뒷산 과수원의 단감이 누렇게 익어 갈 때 제대한 아들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던 그 여인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마을 앞 들판이 온통 황금빛으로 변해가던 24년 전, 미국으로 떠나는 아들을 버스 정류장까지 배웅하며 눈물짓던 그 여인의 모습을 오늘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3년 전 대문 옆 감나무에서 홍시가 툭툭 떨어지던 날, 그 여인은 떠났습니다.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을 이 땅에 남겨두고 언젠가 한 번은 해야 하는 긴 이별을 고향 땅에서 기어이 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여든네 해 동안 이 땅에서 아홉 자녀를 생산하고 양육하며 지치고 상처받은 이 여인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고 거두어 주시옵소서.   어머니! 당신은 지금 행복하십니까? 전명석독자 마당 어머니 버스 정류장 이웃 마을 코흘리개 소년

2024-10-22

[독자 마당] 인공지능 대책

디지털 세대란 디지털 기기 사용에 능숙한 10~30대의 젊은층을 말한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각종 디지털 기기를 장난감처럼 손에 달고 자랐으니, 이를 이해하고 이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반면, 아날로그에 익숙한 기성세대는 디지털 기기들을 이해하고 사용하는 데 능숙하지 못하다. 그런데 이제는 세대의 구분 없이 업무적으로는 물론 일상생활 전반에서도 디지털 기기가 필수 수단이 됐다. 세대를 불문하고 디지털 기기의 사용법을 익혀야 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새로운 디지털 시대를 맞고 있다. 아울러 이로 인해 예상되는 문제점들에 대한 우려도 크다. 디지털 기기도 인간 생활의 편익을 위해 발전시켜온 것인데 인간의 지각능력을 넘어서는 인공지능이 출현하게 된다면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20여년 전 한 미래학자는 인공지능 로봇 같은 존재의 등장을 2045년으로 예측한 바 있다. 하지만 근래 들어 인공지능과 로봇 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앞으로 5년 후인 2029년에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간 생활에 편리를 더해주는 각종 기기의 발달 속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인류 역사에 큰 변환점을 맞게 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인공지능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에 대해서도 미리 연구하고 논의하면서 대비책을 세워야 할 때이다.     인간의 피조물인 인공지능이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그 방도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인공지능 전문가와 정책 관계자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이에 대한 맥락과 지식을 넓혀, 더 편리하고 안락한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할 것이다. 윤천모·풀러턴 거주독자 마당 인공지능 피조물인 인공지능 인공지능 전문가 인공지능 대책

2024-10-15

[독자 마당] 곳곳에 사고 위험

우리 주변에는 사고 위험이 항상 도사리고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 매사에 조심해야 하는 이유다.     미국의 사고 통계를 보면 집에서 다치는 경우가 가장 많다고 한다. 대부분은 집이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많은 위험 요소가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최고 무서운 것이 총기 사고다. 미국에서 총기 사고가 끊이지 않는 이유는 집에 총기를 보관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총기때문이 아니라 사람의 잘못 탓이라고  항변하지만 총기가 없으면 총기 사고도 벌어지지 않는다.     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로 사고를 당하기도 한다. 식당 바닥에 물을 뿌리고 바닥 청소를 하다 감전사고로 목숨을 잃은 식당 주인이 있는가 하면, 2층 베란다에서 무리하게 팔을 뻗어 못질하다 추락사한 사례도 있다. 이는 작은 부주의나 실수도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내가 사는 곳은 4유닛 아파트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세입자의 인종이 모두 다르다. 쓰레기통에는 빈 음료수병과 캔들이 수북이 쌓인다. 나는 빈 병과 캔들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 모아두었다가 일정한 양이 되면 팔러 간다. 운전을 그만둔 지가 오래되었기 때문에 병과 캔들을 쇼핑카트에 싣고 간다.     집 앞 인도는 큰 나무들 뿌리 때문에 콘크리트가 튀어 올라와 있어 카트를 밀고 갈 수가 없다. 그래서 카트를 막 도로로 내리는 순간 쏜살같이 달려온 차가 카트 앞 모서리를 박았다. 카트와 나, 카트에 있던 물건들은 딱딱한 아스팔트 길 위에 나동그라졌다.     집 앞 도로는 시속 25마일 구간이다.  또 막다른 길이라 차들이 천천히 다니는 길이다. 이 집에서 24년째 살고 있지만 이 도로에서 자동차 사고가 난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내가 방심했는지 모른다. 사고로 인해 오른쪽 엉덩이뼈가 부서져 수술을 받았다. 나흘째 걷지도 못하고 있다.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할 일이다.   서효원·LA거주독자 마당 총기 사고 식당 바닥 바닥 청소

2024-10-08

[독자 마당] 목숨과 바꾼 자존심

사람이 명예나 지위, 자존심, 그리고 돈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죄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람의 목숨은 이 세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가치다. 우리에게는 목숨이 하나밖에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무너진 자존심과 수치심 때문에 교사들이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너무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나중에 진상이 밝혀져 교사들의 무고함이 밝혀졌다니 이처럼 황당한 일이 어디 있겠나. 사후에 명예를 회복하고 표창장을 받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또 남아있는 가족의 슬픔은 어찌하라고. 자존심이나 명예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근거 없는 비난쯤은 한쪽 귀로 흘리고, 조금만 더 인내하며 견뎠다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터무니없는 비방으로 마지막 궁지까지 몰고 간 사람들에게도 큰 잘못이 있다.   옛날 중국의 한 고조 유방은 자존심을 버리고 항우의 가랑이 사이를 기어갔지만 끝내는 승자가 됐다. 자존심을 잠시 내려놓고 실리를 택했고, 결국 그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던 셈이다.     학교 성적에 낙담하거나 친구 문제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청소년들이 있다. 또 취업이나 결혼 문제로 인생을 포기하는 젊은이들도 있다. 이런 잘못된 선택은 자신을 낳아주고 키워준 부모에게는 차마 해서는 안 될 죄를 짓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세상에 사람의 목숨보다도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이 한평생 살다 보면 성공도 있지만 실패하는 일도 생기게 마련이다. 무슨 큰일이 생길 때마다 일희일비하지 말아야 한다. 인생을 길게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매 순간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성실하게 살겠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아무리 자존심 상하는 일이 있더라도 절대 극단적 선택은 하지 말아야 한다.    김영훈독자 마당 자존심 목숨 지위 자존심 극단적 선택 친구 문제

2024-10-01

[독자 마당] 끝나지 않은 전쟁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군이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남침을 했다. 전쟁 3일 만에 서울이 점령당하는 등 한국은 풍전등화의 상황이었다.   이후 미군을 중심으로 한 유엔군이 참전하면서 전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맥아더 장군의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성공이 결정적이었다. 이어 9월28일에는 서울 탈환에 성공했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파죽지세로 압록강까지 북진했다.     그러나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는 다시 달라졌다. 그 겨울 영하 30~40도를 넘나드는 혹한에 동사자까지 발생했다. 세계 전쟁사에 겨울 전투로 유명한 ‘장진호 전투’도 이때 벌어졌다. 장진호 전투는 미 해병대가 주축인 유엔군 3만 명이 중공군 10만 명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당시 유엔군은 끝 없이 밀려오는 인해전술의 중공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백마고지 전투도 국군 9사단이 중공군 3개 사단에 맞서 벌인 전투였다. 10일 내내 백마고지의 주인이 24차례나 바뀔 정도였다니 얼마나 치열했는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이런 전투 중 휴전협정이 이루어졌다. 전쟁 발발 3년1개월2일(1129일)만이다. 무수한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남겼지만 전쟁은 휴전했을 뿐이지 끝난 것이 아니다.     지금도 북한은 온갖 도발 행위를 그치지 않고 있다. 끊임없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이젠 오물풍선까지 남한으로 보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된다. 휴전선은 1953년 휴전 협정을 통해 생겼다. 지금도 남북 간 긴장감이 흐르는 곳이다.     올해는 9·28 서울 수복 74주년이 되는 해다. 6·25 전쟁의 교훈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국방력 강화가 필요하다. 전쟁은 힘의 대결이고 평화도 힘이 있어야 유지된다.  강한 힘만이 대한민국과 국민을 지킬 수 있다. 노영자·풋힐랜치 거주독자 마당 전쟁 세계 전쟁사 백마고지 전투도 장진호 전투

2024-09-24

[독자 마당] 퀘벡 프랑스어와 LA 한국어

나는 프랑스에서 학위를 받고 캐나다에서 외교관 생활을 하면서 퀘벡에서 사용되고 있는 프랑스어가 현재 프랑스에서 쓰고 있는 프랑스어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 이유를 연구해 본 적이 있다.     현재의 프랑스어는 명사를 수식하는 형용사가 명사 뒤에 위치한다. 하지만 퀘벡의 프랑스어는 영어처럼 명사 앞에 형용사가 붙는다. 숫자 90의 경우 현재의 프랑스어는 ‘20X4+10=90’, 즉 분해해서 읽는다. 이것이 현재 표준어다. 그러나 퀘벡에서는 바로 ‘90(Noinante)’이라고 읽는다.     이런 차이가 있는 것에 특별한 이유는 없다. 아마 세월이 흐르면서 젊은이들이 재미로 사용하던 슬랭들이 지금의 말로 고착되었고, 옛날 퀘벡에 이민 온 프랑스인 후손들이 지금도 옛 표준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기 때문에 현대 프랑스어로 공부를 한 사람들은 퀘벡 사람들이 프랑스어를 말할 때 ‘저 사람은 퀘벡에서 왔군’하고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이를 보면 현재 LA에서 사용되고 있는 한국어도 언젠가는 퀘벡의 불어처럼 ‘LA 한국어’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에서는 잘 사용하지 않는 옛날식 표현이나 단어들을 LA에서 종종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 한인 라디오 방송에서 날짜를 알려주면서 “오늘이 8월 초아흐레입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8월 9일을 이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이 말을 듣고  “오늘이 며칠이라는 거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한국 방송에서는 이제 잘 사용하지 않는 표현 방식이기 때문이다. 마치 현대 프랑스어와 퀘벡 프랑스어의 차이를 보는 것 같다. 세월이 더 흐르면 한국에서의 한국어와 LA에서의 한국어도 현대 프랑스와 퀘벡 프랑스어처럼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우려된다.  박대원 / LA거주·전 외교부대사독자 마당 프랑스어 한국어 퀘벡 프랑스어 현대 프랑스어 la 한국어

2024-09-17

[독자 마당] 베토벤 흉내

천재 음악가로 알려진 베토벤은 노년에 눈이 멀고 귀도 잘 들리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음악에 대한 그의 열정은 남달라 노년에도 창작 활동을 그치지 않았다. 전해 들은 일설에 의하면 베토벤은 다른 천재 음악가들과는 달리 어릴 때는 음악을 별로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베토벤의 아버지는 아들의 음악적 재능을 알고 있었다. 그는 안타까운 마음에 피아노 한 대와 함께 베토벤을 창고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잠가 버렸다고 한다. 베토벤은 이 창고 안에서 많은 음악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내가 기타를 배우기 시작한 것은 55세 되던 해였다.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LA시 커뮤니티 칼리지에 다닐 때였다. 당시 토요일에는 일하지 않아 낮에도 학교에 가곤 했었다.   어느 토요일에도 학교에서 공부를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에 어느 구석에서 음악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가보니 한 강의실에서 나는 기타 소리였다. 강의실을 들여다보니 젊은 학생들이 기타를 배우고 있었고 기타 선생님에게 나도 배울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의 기타 배우기가 시작됐다.   지금 내 나이가 86세이니 기타를 치기 시작한 것도 어언 31년이 되었다. 내가 가장 자신있는 기타 연주곡은 베사메무초다. 최근엔 ‘인생은 네 박자’라는 한국 대중가요를 기타로 연주하며 노래도 부른다. 매일 이 두 곡은 빠짐없이 연주하고, 다른 여러 가지 음악을  최소한 3곡 정도 더 연주하면서 노래한다. 하루에 최소 5곡 이상은 연주를 하고 노래도 하는 셈이다.   나도 나이가 있어서인지 언제부터인가 눈이 잘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런 증상이 몹시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불완전한 귀와 눈으로 기타를 연주한다.  서효원·LA 거주독자 마당 베토벤 흉내 천재 음악가들 베토벤 흉내 음악 소리

2024-09-10

[독자 마당] 한-미 운전면허 인증

2024년 현재 한국 운전면허증을 미국 운전면허증으로 바꿔주는 주는 루이지애나, 매사추세츠, 메릴랜드, 미시간, 버지니아, 사우스캐롤라이나, 아이다호, 아이오와, 아칸소, 앨라배마, 워성턴, 웨스트버지니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플로리다, 하와이 등 23개 주에 이른다. 이들 주에서 미국 생활을 시작하는 한인은 도착하자마자 별도의 운전면허 시험을 거치지 않고 바로 한국 운전면허증을 미국 운전면허증으로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그런데 한인 거주자가 가장 많은 캘리포니아주는 아직 이 프로그램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     이 혜택은 국가 간에 이루어지는 외교 교섭 사항이 아니고 각 주 정부가 한국 정부와 운전면허 상호인증 협약을 체결하면 되는 아주 간단한 교섭사항이다. 나는 과거 한국-온타리오 운전면허 상호인증 협약을 북미주 지역 최초로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온타리오 주 정부교통 장관, 담당 직원들과 1년 동안 친분을 쌓은 끝에 얻는 성과였다. 그런데 이 협약을 체결하고 나니 오히려 온타리오 지역 캐나다인들이 더 좋아했다. 한국에 나갈 때 한국 면허시험을 안 봐도 한국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며 신나했다. 또 온타리오주에 주소만 있으면 한국 면허증을 캐나다 면허증으로 바꿔준다고 하니 토론토로 여행을 왔던 미국 거주 한인들도 온타리오주 친지의 주소를 이용해 한국 운전면허증을 캐나다 면허증으로 바꿔갔다. 미국에서는 캐나다 면허증이 인정되기 때문에 미국 면허증을 받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가주에 정착하는 한인들은 한국 운전면허증이 있어도 운전 면허증을 다시 취득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출한다. 운전면허증 교환은 이런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LA총영사관,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 등 캘리포니아주 내 한국 공관들이 합심해 주 교통 당국과 협정 체결을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공관장들의 노력 여하에 따라 한인을 위한 혜택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박대원 / LA거주, 전 외교부대사독자 마당 운전면허 인증 한국 운전면허증 운전면허증 교환 운전면허 상호인증

2024-09-03

[독자 마당] 미국 대선에 대한 기대

미국의 건국 이념에는 개신교 일파인 청교도 정신이 담겨 있다. 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대륙인 미국으로 이주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상생활에서 엄격한 교리를 지키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 책임과 의무를 강조하는 생활신앙을 유지하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청교도 정신은 자유, 평등, 행복추구권 등 인간의 천부적 권리를 중시하는 미국의 건국 이념에 담겨 있다.  미국이 자유 민주주의 체제로 발전하는 데 청교도 정신이 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은 광대한 영토와 풍부한 부존자원을 가진 것은 물론 지정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위치에 있다. 여기에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한 건실하고 진취적인 국민의 노력 덕에 최근 한 세기 동안 세계 최강국의 위상을 지켜오고 있다.     미국은 청교도의 정착 이후 유럽 여러 곳에서 다양한 민족이 이주해 왔다. 이들은 영국의 식민지배를 거부하고 하나로 뭉쳐 대항하며, 마침내 독립을 이뤘다. 이후 광활한 국토를 개발하기 위해 세계 각지로부터 이민을 받아들였다. 이를 통해 미국은 다민족 국가로 발전하게 됐다. 미국의 법과 제도는 신앙을 바탕으로 한 사랑,용서,포용을 강조하고 자유,평등,정의,양심을 근간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법과 규정의 공정하고 엄격한 시행은 건실한 미국적 가치를 만들어 내며 미국을 세계 최고의 국가로 만들었다.     다민족 국가인 미국은 미국적 가치 안에서 하나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양한 것들을 한 용광로에 넣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는 ‘멜팅팟’ 정책이 중요성을 갖는다. 국민의 이해와 공감을 한 흐름으로 모으기 위한 교육과 지도층의 노력이 필요하다. 11월 대통령 선거에서 유능한 인물이 당선돼  미국의 앞날이 더욱 밝아지기를 기대한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미국 대선 청교도 정신 다민족 국가 자유 민주주의

2024-08-27

[독자 마당]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고대 유적지를 여행하다 보면 신기한 것들이 많다. 내가 여행했던 곳 가운데 멕시코의 치첸이트사, 과테말라의 티칼, 페루의 마추픽추 그리고 요르단의 페트라 등이 기억에 남는다. 이들 중에 물로 인해 망한 곳이 페트라다. 페트라는 거대한 암석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깎아 신전과 주택 등을 만들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폭우로 홍수가 발생해  한순간에  모든 것을 쓸어가 버렸다고 한다.     전 세계가 기상 이변을 겪고 있다. 이곳 LA도 연일 불볕더위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국도 계속되는 폭염으로 난리라고 한다. 그런가 하면 폭우가 쏟아져 홍수 피해가 발생한 나라도 있다.   자연은 우리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존재다. 따라서 자연에 순응하면서 더는 자연이 훼손되지 않도록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지금 지구 온난화가 심각한 문제다. 지구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면서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이다. 많은 과학자가 지구 온난화는 이산화탄소 등 많은 온실가스 배출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그런가 하면 어떤 주기에 의해서 지구가 추워졌다 더워졌다를 반복한다고 주장하는 과학자도 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구의 남극과 북극은 여러 번 뒤바뀌었다는 것이다.     지구 온난화의 정확한 이유에는 이견이 있지만 논란이 필요 없는 것도 있다. 사람은 날이 가고 시간이 지나면 늙는다는 것이다. 진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많은 곳으로 사람까지 보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사람이 늙어가는 것은 황제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젊고 기운이 넘쳤던 나도 벌써 86세가 되었다. 나라고 나이 드는 것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나이 듦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도리밖에 없다. 무엇을 해야 즐길 수 있을지는 연구해 봐야겠다.  서효원·LA거주독자 마당 지구 온난화 치첸이트사 과테말라 홍수 피해

2024-08-20

[독자 마당] 2028년 LA올림픽

2028년 하계올림픽은 LA에서 열린다. LA는 1984년 제23회 올림픽을 개최한 바 있지만 당시 공산권이 대거 불참한 반쪽 올림픽이었다.     LA올림픽이 반쪽이 된 것은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후유증 때문이다. 서방 국가들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해 모스크바 올림픽에 대거 불참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가들은 LA올림픽에 불참했다.     두 차례의 반쪽 올림픽을 끝낸 것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 당시에도 소련을 위시한 공산국들은 서울올림픽 불참을 선언하면서 만약 6개 종목의 개최지를 북한에 넘겨주면 참가를 고려해보겠다고 했다. 이에 앞장 선 나라가 동독이었다. 서울올림픽 1년반 전인 1987년3월 동독의 에발트 체육장관은 서울을 방문, 박세직 서울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만나 이같은 제안을 했다. 이에 박 위원장은 한국말로 “당신은 김일성의 지시를 받고 나에게 얘기하는 것인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에 당황한  동독 측 통역 여성은 한국어로 “이 인간은 동독에서 대단히 중요한 인간인데 그렇게 소리 지르지 마십시오”라고 따졌다. 그 순간 모두들 속으로 웃음이 빵 터졌다. 사태를 파악한 에발트 장관은 오히려 동독으로 돌아가면 사회주의 국가들에 서울올림픽 참석을 독려하겠다고 약속했다.     그후 동독을 시작으로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들이 참가를 통보해왔다. 에발트는 공산권에서 정말로 ‘중요한 인간’이었다. 김일성은 당시 한국은 세계 최빈국으로 거리에는 거지들이 득실거리는 형편없는 나라라고 공산국가들에게 선전했다. 그러나 서울올림픽에 참가한 공산국가 선수들은 이것이 거짓 선전임을 알 수 있었다. 필자는 당시 서울올림픽 조직위에 파견되어 전세계 국가의 올림픽 참가를 독려하는 총 책임자였다.   LA에서 올림픽이 다시 열린다니 감개무량하다.  박대원 / 전 외교부대사·LA거주독자 마당 la올림픽 서울올림픽 불참 서울올림픽 참석 서울올림픽 1년반

2024-08-13

[독자 마당] 미국 초등학교 체험

1976년 한국에서 텍사스주 포트워스로 이주했다. 이사 직후 새 학기가 시작된 탓에 딸 에스더는 초등학교 3학년에 입학했다. 그런데 에스더는 아침마다 학교에서 나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울며 한국으로 돌아가자고 떼를 부렸다. 나는 하나님께 의뢰하는 마음뿐이었다.   우리 모녀의 상황을 눈치챈 담임 선생님은 어느 날 나도 에스더와 함께 교실에 들어오라고 하는 것이었다. 뜻밖의 호의 덕분에 교실에서 딸 옆에 앉아 통역해 주면서 딸의 공부를 도울 수 있었다. 선생님은 때때로 “미세스 이, 읽어 보세요”라고 했고, 나는 주저하지 않고 책을 읽었다. 마치 미국 초등학교 3학년이 된 기분이었다.     점심도 식당에서 아이들과 함께 먹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에게 “산 토끼 토끼야‘ ’나비야, 나비야‘ 노래와 율동을 가르쳤다. 그때 쉬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던 아이들 모습이 눈에 선하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은 느닷없이 에스더의 피아노 독주회를 하자고 제안했다. 언젠가 에스더가 피아노를 친다고 말 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제안에 너무나 고마웠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전교생이 모인 강당에서 피아노 앞에 선 에스더는 인사를 하고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는 자신만만하게 이어졌고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그 후 에스더가 학교 운동장에 나가면 여기저기서 부르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이때부터 에스더의  갈등도 없어졌다. 나도 딸과 함께했던 초등학교 교실에서의 생활을 중단할 수 있었다. 딸 덕분에 미국 초등학교 학생 체험을 했고, 지금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담임 선생님의 친절과 사랑, 배려의 고마움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이제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딸의 모습을 쿠퍼 선생님에게 보여 드릴 수 있다면…. 이영순·샌타클라리타독자 마당 미국 초등학교 초등학교 체험 초등학교 교실 초등학교 학생

2024-08-06

[독자 마당] 효도의 의미

효도란 부모의 은혜에 감사하며 보답하려는 마음가짐이고 행위이다. 동양 윤리에서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 했는데 이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할 어떤 윤리, 도덕도 효가 밑받침되지 않고서는 온전하다 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불가사의한 우주 만물의 생성, 운행과 그 안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우리는 멀리는 조상으로부터, 현실적으로는 부모로부터 연유되었음을 알고 이에 감사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러므로 효의 동기는 감사라 할 수 있다. 감사는 필요한 것을 내, 외로부터 받아 채워졌을 때의 순 반응이다. 만물의 운행법칙인 작용에 대한 같은 양의 반작용, 또는 심은 대로 거둔다 함은 같은 원리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사물에 대해 생각하고 분별하는 지각 능력이 있어 주변 상황에 따라 자신에게 유리한 길을 찾는 판단을 하게 된다.     그래서 자칫 감사에 대한 정도를 벗어나 부모에 대한 통상적 효의 도리를 저버리게 된다면 이는 불효로 여긴다. 불효는 감사에 이어지지 않는 천지 만물 운행질서의 천리를 거스르는 일이기에, 그에 따른 어떤 언행심사도 바르고 온전할 수 없다. 세상 어느 것과도 바르게 연결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므로 효는 단순히 예로부터 내려온 윤리,도덕의 한 축이기 이전에 불변하는 만물 운행과정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삶의 인적,물적 환경이 달라지고 심한 생존경쟁에 내 몰리면서 기존의 도덕률이나 가치관은 뒤로 밀려나고 있다. 지식이나 기능만으로 저마다의 입지를 다지려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생활 여건이 아무리 변해도 이 모두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서로가 정직,존중,신뢰의 고리로 엮어질 때 관계는 완성되며, 이를 통해 효도의 범주에도 들어서게 된다. 윤천모·풀러턴독자 마당 효도 의미 만물 운행과정 천지 만물 우주 만물

2024-07-30

[독자 마당] 성 소수자

개빈 뉴섬 가주 주지사가 학교 측이 학생의 성 정체성을 학부모에게 알리는 것을 금지하는 법안에 서명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와 함께 성 소수자 이슈도 다시 관심을 끌고 있다.   성 소수자를 의미하는 LGBTQ는 다양한 형태의 성 소수자를 지칭하는 단어의 알파벳 첫 글자를 따 만든 말이다. 즉, 여성 동성애자(lesbian), 남성 동성애자(gay)(남성 동성애자),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 성적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없는 사람(queer) 등을 의미한다.   성 소수자는 인류의 초기부터, 그리고 역사적으로 어떤 국가나 민족에도 있었다고 한다. 다시 말해 성 소수자의 존재는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자연적인 현상이라는 것이다.     과거 신화가 지배했던 시대에는 성 소수자가 별로 문제 될 것이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근대에 접어들어 결혼제도가 확립되고, 도덕과 사회규범이 생기고, 법이 엄격해 지면서 성 소수자에 대한 시각에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단지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체벌과 죽임을 당했던 시대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성 소수자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과학자들은 성 소수자의 성향은 약물이나 정신과적 방법으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즉, 성 소수자는 선천적으로 그렇게 태어난다는 의미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차별하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나와 다르다는 이유에서 차별이 시작된다. 여전히 일부 지역, 일부 사람들에 남아있는 인종차별 의식도 같은 맥락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 성 소수자 대회라는 것이 열렸다고 한다.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런데 이 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들고 있던 피켓이 시선을 끌었다. 그가 들고 있던 피켓에는 ‘우리는 어떠한 차별도 반대한다’고 적혀 있었다.   서효원·LA독자 마당 소수자 소수자 이슈 남성 동성애자 여성 동성애자

2024-07-23

[독자 마당] 중남미 여행과 한국병원

얼마 전 페루로 여행을 갔던 LA거주 한인 여성이 현지에서 사고를 당해 병원비를 모금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었다. 안타까운 사연을 접하면서 이 분이 페루-한국 간 무상원조 사업으로 설립된 페루 내 한국 병원에 대한 정보를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페루의 수도 리마에는 국립병원 안에 응급 병동이 있는데 이 병동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500만 달러 무상원조로 지어졌다. 또 시내 중심에는 베야비스타 코이카 한국보건소가 운영되고 있고, 리마 외곽 파차쿠텍에도 한국 병원이 있다. 또 페루 서해안 지역인 피우라 시에는 역시 한국의 1000만 달러 무상원조로 산타로사-한국 친선병원 3개 병동이 설립돼 페루 서부지역의 의료를 담당하고 있다.     만약 이 여행자분이 이런 정보를 미리 알고 이들 한국 병원 중 한 곳에서 치료를 받았더라면 아마 큰 혜택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한국 정부는 19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면서 지금까지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급속히 변모했다.  특히 중남미, 동남아시아, 아프리카 지역 등에서는 학교·병원 등을 무상으로 지어주고 있다. 따라서 미국 내 각 지역에 있는 총영사관 등에서는 한인들에게도 각국에 설립된 한국 병원 관련 정보를 알릴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행자들에게는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페루에는 병원뿐만 아니라 쿠스코에서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에 한국-페루 도자기 학교도 있다. 이 학교에는 한국인 자원봉사들도 많다.    또 한인 여행자가 볼리비아에 갔다가 긴급 의료 상황이 발생해 고생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만약 이 분이 볼리비아의 수도 라파즈 중심에도 한국 병원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박대원 / 전 외교부 대사·코이카 총재독자 마당 한국병원 중남미 중남미 여행 한인 여행자 한국 친선병원

2024-07-16

[독자 마당] 대한민국의 미래

“전쟁을 잊은 군대는 그 존재 가치가 없습니다. 평화는 강력한 힘에 의해 지켜집니다.”   지난 2020년 군 여론조작 은폐·축소 지시 혐의로 기소됐던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이 2심 재판 중 최후 진술에서 한 말이다. 비록 그가 재판정에서 한 발언이었지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1950년 6월25일 새벽 4시,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전쟁은 1953년 7월27일 휴전 협정까지 1129일(3년 1개월 2일)간 지속했다. 수도 서울이 북한군 수중에 들어가는데 걸린 시간은 고작 3일에 불과했다.     하지만 당시 여러 국가가 대한민국에 도움을 줬다. 미국을 포함 16개국이 군을 파견해 직접 참전했다. 6개국은 의료지원팀을 보냈고, 40개국이 물자 수송 지원에 나섰다. 전후 복구사업을 지원한 나라도 6개국이나 된다. 당시 대한민국은 존재감이 크지 않는 나라였다. 그런데도 이렇게 많은 국가가 지원에 나선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현재는 어떠한가?  남북이 휴전 협정을 맺은 지도 71년이 됐지만 북한은 여전히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도발 행위를 일삼고 있다. 반면 6·25 전쟁의 참상을 모르는 한국의 세대는 풍요로운 시대에 안주하는 모습이다.     얼마 전 신문 지상에서 너무나 반가운 뉴스 하나를 봤다.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4800 달러를 기록, 일본을 추월했다는 것이다. 6·25 전쟁 직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76달러로 세계 최빈국 가운데 하나였다. 단기간에 이룬 놀라운 성과였다.   대한민국의 급성장은 전쟁의 폐허를 극복한 기적이며 금자탑이다. 그러나 아직 서민들은 이런 성장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좀 더 참고, 기다리고 인내하자. 그리고 세계 속에 우뚝 선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해 보자. 노영자·풋힐랜치독자 마당 대한민국 미래 당시 대한민국 1인당 국민소득 휴전 협정

2024-07-09

[독자 마당] 라이스 전 장관의 축사

지난 6월15일 스탠퍼드 대학에 있는 스탠퍼드 골프 클럽에서 열린 손자의 ROTC 임관식에서 참석했다. 이날 임관식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참석해 축사를 했다. 라이스 전 장관의 축사는 참으로 감명 깊었다.     라이스 전 장관은 세계 2차 대전 직후인 1945년 무렵만 해도 미국은 전 세계 경제력의 65%를 차지하는 초강대국이었다고 했다. 경제력 면에서 미국과 비교되는 나라가 없을 정도였다는 것이다. 미국은 이런 힘을 활용해 세계 각국의 경제발전을 지원하고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도 앞장섰다고 라이스 전 장관은 강조했다.   심지어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들인 독일과 일본도 미국의 도움을 받아 전후 경제 대국으로 발전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라이스 전 장관은 그래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위대하다고 했다.   그런 시대에 살던 미국인들은 소비가 미덕이라며 경제적 호황과 인생을 즐겼다.     사람은 시대에 따라, 그리고 어느 국가에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행복 여부가 결정되는 것 같다. 20세기 초 한국에서 태어난 나는 많은 어려운 일들을 겪었다. 특히 1950년 북한의 남침으로 시작된 6·25 전쟁 때는 많은 고생을 했다. 물론 나뿐만 아니라 그 당시 한반도에 살던 모든 사람이 힘들었다. 하지만 이후 한국은 눈부신 발전을 이룩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나도 수출 증가에 일익을 담당하며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한 경제 발전을 체험했다. 이런 경제적 도약을 토대로 한국은 1988년 서울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고, 2002년에는 월드컵을 유치해 4강 진출이라는 영광을 누렸다. 이후 미국에 이민을 와 좋은 환경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있으니 이만하면 나는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좋은 시대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감사한 삶이다.  김영훈 / 자유기고가·한국 ROTC 1기독자 마당 라이스 장관 콘돌리자 라이스 세계 경제력 경제 발전

2024-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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